관악기의 내경과 지공의 크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옛날에 서양에서도 똑같이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현대식 플룻은 관의 내경이 일정한 반면, 바로크 시대의 플룻은 오늘날과 비교해서 취구 반대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단소의 내경이 좁아지도록 만든 것과 같은 이유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지공의 크기도 음마다 다르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cross fingeriing에서의 음정을 맞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겁니다. 즉, 온음이 정확하게 나도록 하나의 구멍을 뚫었더라도, 그 아래 지공을 막아서 반음을 낼 때 반음이 정확히 나라는 보장이 없는데, 온음과 반음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구멍의 위치와 크기를 동시에 조정한 것이지요(변수가 두개니까 방정식도 두개여야 겠지요...ㅎㅎ) 하지만, 현대의 플룻은 크로스핑거링이 아니라 반음을 정확하게 내는 구멍을 뚫어서 키를 달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지요. 그리고 음의 크기가 균일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경과 구멍의 크기가 일정하도록 하였지요.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리가 화려하고 높은 음역을 잘 내기 위해서 지공을 크게 뚫었구요.
오늘날 우리의 단소 제작 수준은 바로크 시대의 수준 정도라고 보여집니다.(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은 그것보다도 뒤떨어 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직 길이, 내경, 지공의 위치와 크기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데이터 시트조차 존재하지 않고 있지요. 여기에는 우리 국악의 음정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서, 사람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겁니다. (뭐... 그게 어쩌면 국악의 맛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뿌리단소를 그동안 선호해왔던 것은 일단 보기에 좋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특히 정악에서는 협음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전폐음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반면, 산조나 서양음악, 창작곡 등에서는 전폐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제는 구멍을 다 막았을 때의 공명관의 일부인 뿌리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제 경우에도 개량단소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협"음이 어떻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제가 아는 한 어떤 관악기에서도, 서양의 목관악기는 물론이고 대나무로 만드는 께냐, 사쿠하치, 샤오(중국의 단소) 등에서도, 뿌리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아무도 고민한 적이 없는 문제일 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아마도 단소의 미래는 플룻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네요. 계면조 단소와 같은 전통 단소, 그리고 전통 단소로 연주하는 우리의 전통음악은 계속 살아남아 있겠지만, 아마도 서양의 평균율에 맞는 음계를 가진 악기가 많이 보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용구식 개량단소는 음계는 삼분손익법에 의한 우리 전통적인 12음계를 유지한 채 음만 더 확장시킨 것이라서, 평균율에 의한 음악을 연주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클라리넷이나 트럼펫과 같은 이조악기로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합주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남들이 맞춰주지 않으면... 저는 제 아내가 저한테 바이올린을 맞춰주기 때문에 그럭저럭 합주가 가능하지만, 다른 악기와의 합주는... 아직 시도도 못해봤네요)
단소를 이용하여 서양음악을 연주하고 싶으면, 제대로 된 평균율에 맞는 단소를 만들어 연주하는게 차라리 더 나을 겁니다. 저는 요새 초등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계면조 단소로 동요 연주하도록 가르키는 것은 도포입고 갓쓰고 발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모든 단소를 다 평균율에 맞게 변형하자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거구요. (판소리할 때는 역시 도포에 갓쓰고 하는 게...) 다만, 영산회상은 계면조 단소로, 산조는 산조 단소로 연주하는 것처럼, 서양음악은 평균율 단소로 하자는 거지요. 그리고 저는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마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단소의 모습은 바로크식 플룻과 현대 플룻의 과도기에 나타났던 클래식 플룻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때쯤 되면 뿌리 단소는 거의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왜냐하면, 서양음악에 맞는 정확한 음정과 밝은 음색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뿌리는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전문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잖아요. 예전에 비해서는 악기의 정밀도가 더 요구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단소를 뿌리없이 만들자는 건 저도 반대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계면조 단소에서는 뭐 그렇게 중요한 이슈도 아닐 뿐만 아니라, 조금만 신경써서 "소리를 먹어 버리는" 현상을 해결하고 나면, 뿌리단소가 역시 "뽀다구" 나잖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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